사회적 지위가 현대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
70 대 70 소개팅 후기
요즘 나의 인생 모토는 꽤 단순해졌다. 가능한 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는 것. 우연한 기회로 나는 70 대 70 소개팅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긴장감을 품은 행사에 다녀오게 되었다.
이 행사는 어딘가 프라이빗하고, 어느 정도 필터링이 있으며, 참여 자체에 일정한 조건이 필요한 로맨틱한 자리처럼 설명되었다. 막상 가보니 이곳은 로맨스라기보다, 현대 사회가 관계를 어떻게 정렬하고 압축하고 판단하는지를 보여주는 꽤 흥미로운 이벤트에 가까웠다.
사실 나는 당장 연애를 하고 싶어서 이곳에 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궁금했다. 요즘 왜 혼술바와 대형 소개팅들에 사람들은 왜 돈을 내고, 시간을 내고, 체력을 써가며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바라보는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참가비였다. 기본 30만 원. 처음에는 “30만 원을 내면서까지 소개팅을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보면 이상한 가격도 아니었다. 1 대 1 소개팅을 해도 식사와 술값으로 10만 원은 훌쩍 넘어가는 시대다.
그렇다면 70명을 한 번에 만나고, 반복되는 탐색의 과정을 하루 안에 압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행사는 일종의 관계적 패스트트랙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행사를 운영하는 곳이 알고 보니 결혼 정보 회사였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곧바로 결혼을 전제로 한 자리는 아니고, 진지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만남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사람들, 그리고 소개팅의 형식
가기 전에 어떤 편견이 있었다. 남자는 능력 좋고, 여자는 외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닐까. 사회적 조건과 외모 자본이 노골적으로 배열된 전시장 같은 곳을 상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중심에 놓인 것은 외모라기보다 조건이었다. 직업, 커리어, 배경, 나이, 거주지. 결혼 정보 회사가 주최한 자리답게,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은 연애의 감각보다 배우자 시장의 언어에 더 가까웠다.
남성 참가자들의 직업군은 확실히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쪽에 가까웠다. 대기업, 증권사, 의사, 약사 같은 직업군이 눈에 띄었다. 나이대 역시 흥미로웠다. 여성분들은 대체로 30대 초중반이 많았고, 남성분들은 30대 중후반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예외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사회가 말하는 결혼 적령기의 중심부에 위치한 사람들이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런 행사에서 오히려 “남자”가 귀하다는 말이었다. 연애 시장에서는 흔히 여성이 더 선택권을 가진다고 말하지만, 결혼 시장으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남성은 결혼에 대한 사회적 마지노선이 상대적으로 늦게 설정되고, 연하를 만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결혼 시장에서는 역설적으로 “괜찮은 남자”가 희소한 자원처럼 취급된다.
행사의 형식은 매우 효율적이었다. 남자 3명과 여자 3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약 15분 정도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끝나면 남자들이 다음 테이블로 이동한다. 그렇게 20개가 넘는 테이블을 돈다. 식사와 휴식 시간을 포함하면 전체 러닝타임은 약 7시간.
처음 몇 테이블에서는 누구나 어느 정도 밝고 예의 바른 표정을 유지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의 질문은 반복되고, 자기소개는 자동화되며, 리액션은 조금씩 닳아간다. 파워 E라고 해도 이 구조 안에서는 에너지를 상당히 소모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쯤에는 내가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조차 선명하게 구분하기 어려워지긴 했다.
7시간의 대화가 끝나면 마음에 드는 사람의 번호를 기억해 최대 6명까지 구글 폼에 제출한다. 상대 역시 나를 선택했다면 주최 측에서 연결해준다.
사업적으로 보면 꽤 영리한 구조다. 행사는 자연스럽게 결혼 정보 회사의 홍보가 되고, 매칭이 성사되면 좋은 성공 사례가 되며, 매칭되지 않은 사람들의 데이터는 잠재 고객으로 남는다. 사람들은 사랑을 찾으러 왔지만, 그 과정에서 시스템은 동시에 데이터를 수집한다.
사회적 지위는 결국 효율성을 위한 언어가 아닐까
행사 내내 내가 가장 많이 한 것은 관찰이었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생각은 이것이었다. 사회적 지위란 이제 단순히 과시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세계 안에서 자신을 빠르게 설명하기 위한 효율성의 언어가 된 것이 아닐까.
과거에도 사회적 지위는 중요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는 오래전부터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다만 지금은 그 기준이 훨씬 세분화되고, 훨씬 빠르게 작동한다.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만, 그만큼 더 빨리 판단해야 한다. 노이즈가 많고, 불신이 많고, 선택지가 너무 많은 세계에서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에게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판별하려 한다.
그때 사회적 지위는 일종의 압축 파일이 된다. 직업은 소득과 성향을 압축하고, 거주지는 경제력과 생활권을 압축하고, 나이는 결혼 가능성과 생애 계획을 압축한다. 사람은 복잡하지만, 시장은 복잡한 사람을 오래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분류한다.
프로필 카드
행사장에서는 모두에게 개인정보를 적는 카드가 주어진다. 나이, 직업, 사는 곳, MBTI, 직장 위치. 얼핏 보면 최소한의 정보처럼 보인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최소한의 정보만으로도 상대에 대한 상당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이를 보면 이 사람이 결혼 적령기에 있는지,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해왔는지가 읽힌다. 직업을 보면 대략적인 소득 수준과 생활 리듬, 성향을 추측하게 된다. 사는 곳은 경제력과 생활 반경을 드러내고, 직장 위치는 직업과 결합해 더 구체적인 회사나 업계를 유추하게 만든다.
MBTI는 이제 거의 현대식 혈액형처럼 기능한다. 16개의 알파벳 조합으로 한 사람의 다양성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빠르게 분류할 수는 있고 사람들은 이를 선호한다.
이 행사에서 모든 대화는 결국 그 프로필 카드에서 시작됐다. 누군가는 직업과 직장 위치를 보고 회사를 추측했고, 누군가는 특정 산업군을 적어 자신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의사라는 직업이 나올 때마다 “무슨 과세요?”라는 질문이 거의 자동적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같은 의사라도 과에 따라 연봉, 워라밸,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카드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출발점인 동시에, 서로를 평가하기 위한 체크리스트였다. 그래서 이 과정은 소개팅이라기보다 면접에 가까워 보였다.
착장
프로필 카드가 언어로 드러나는 사회적 지위라면, 착장은 이미지로 드러나는 사회적 지위였다. 무엇을 입고, 어떤 시계를 차고, 어떤 주얼리를 걸쳤는가. 이 모든 것은 말하지 않아도 말하는 것들이다.
나는 평소 명품이나 고가 브랜드를 구매를 안하는 편이지만, 예전에 했던 패션 일과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습관 덕분에 브랜드와 가격대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행사장 안에서 보이는 착장들은 꽤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남성 쪽에서는 톰브라운처럼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나, 명확한 로고가 드러나는 옷들이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지만, 그것이 가장 직관적으로 재력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시계 역시 비슷했다. 롤렉스, AP. 그리고 그 안에서도 서브마리너, 데이토나, 로얄오크처럼 잘 알려진 라인업들이 많았다. 이런 시계들이 효과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시계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것이 비싸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취향보다 인지도다. 다시 말해, 이 물건들은 아름답기 이전에 읽히기 위해 존재한다.
여성 쪽에서는 시계, 주얼리, 가방이 주요한 장치처럼 보였다. 행사 특성상 가방이 크게 드러나기는 어려웠기에 시계와 주얼리가 더 눈에 띄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까르티에 탱크를 착용한 여성분들이 정말 많았다는 점이다. 체감상 열 명 가까이 본 것 같다. 이는 까르티에라는 브랜드가 여성들에게 가진 인지도와 선호도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
*주얼리의 경우 불가리, 티파니, 까르티에가 많이 보였다.
다만 남성 쪽이 비교적 직관적인 상징을 택했다면, 여성 쪽은 조금 더 은근한 방식으로 취향과 지위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의 착장이 “나를 알아봐 달라”에 가깝다면, 여성의 착장은 “알아볼 사람은 알아본다”에 가까웠다고 할까.
이 차이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라기보다, 아직도 남성에게는 능력과 경제력이 더 직접적으로 요구되는 사회적 구조와도 맞닿아 있는 듯했다.
*이를 보고 럭셔리 브랜드들이 망할 수 없고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이유가 단번에 납득에 되기도 했다.
나이, 그리고 결혼
개인적으로 결혼 역시 사회적 지위를 구성하는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누구와 결혼하는가, 어디에서 사는가, 어떤 식장에서 결혼하는가, 어떤 예물을 주고받는가. 결혼은 사랑의 제도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위치를 새롭게 배치하는 의식이다.
생각해보면 결혼은 꽤 비이성적인 행위다. 두 사람이 앞으로 평생 서로만을 사랑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법과 가족과 사회의 제도 안에 등록한다. 사랑이라는 본질적으로 유동적인 감정을, 결혼이라는 매우 고정적인 형식 안에 넣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결혼을 원한다. 그 안에 안정, 인정, 소속, 지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는 결혼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 나이에는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존재하지만, 특히 여성들에게는 더 촘촘하고 더 이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듯했다. 테이블에서의 대화 역시 연애보다는 결혼에 가까웠다. 결혼 의향이 있는지, 연상도 괜찮은지, 장거리가 가능한지, 언제쯤 결혼하고 싶은지 같은 질문들이 반복됐다.
그리고 그 답변들을 서로의 앞에서 노트에 적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동시에, 그 사람을 하나의 후보로 기록하는 행위이자 실시간으로 상대방에게 평가 당하는 그 장면은 솔직했고, 그래서 조금 낯설었다.
여성분들 중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결혼 나이의 마지노선이 분명한 분들이 많아 보였다. 물론 생물학적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크게는 나이가 들수록 결혼 시장에서 자신의 지위가 약해진다는 감각이 작동하는 듯했다.
실제로 한 여성분은 “여자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나이가 들면 연하를 만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능력 있는 연상을 만나기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남성들이 기본적으로 더 어린 여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말을 여성분이 직접 해주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대화 그리고 질문
10분에서 15분이라는 시간 안에서 한 사람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대화는 대체로 자기소개에서 출발했고, 이후에는 이상형, 성격, 일, 주말의 생활 같은 비교적 공통적인 질문들로 이어졌다.
여섯 명이 각자 그 질문에 한 번씩만 답해도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그 짧은 시간은 누군가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했고, 누군가를 분류하기에는 충분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오히려 조금 색다른 질문들이 나왔을 때였다. 프로필 카드에 적힌 정보가 한 사람의 조건을 보여준다면, 예상 밖의 질문은 그 사람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드러냈다.
이를테면 “이 직업을 가진 사람과는 연애하기 어렵다?” 같은 질문은 상대가 타인의 직업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는지를 보여줬고, “이번 월드컵 탈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은 분노나 실망이 섞일 수 있는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를 드러냈다.
결국 이야기가 잘 흘러갔던 테이블은 정보를 캐내는 질문이 오간 곳이 아니라, 생각을 끌어내는 질문이 오간 곳이었다. 직업이 무엇인지보다 그 직업을 어떻게 말하는지가 중요했고,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보다 그 취향을 어떤 온도로 설명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사람은 프로필에 적힌 단어보다, 그 단어 밖으로 밀려나오는 말들에서 더 잘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업계에서 사업개발을 하고, 네트워킹을 하며 처음 만난 사람들과 빠르게 관계를 만들고 대화를 이어가야 했던 경험이 이 자리에서 꽤 도움이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지, 어떤 지점에서 농담을 멈춰야 하는지를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한 능력이었다.
질문은 가까워지기 위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쉽게 선을 넘을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상대를 빨리 알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면 질문은 호기심이 아니라 심문처럼 들릴 수 있다.
실제로 몇몇 테이블에서는 질문 하나가 분위기를 급격히 차갑게 만드는 장면도 보였다. 결국 이 자리에서 좋은 질문이란 상대를 빨리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게 만드는 질문에 가까웠다.
남은 생각들
이 경험 이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나의 사회적 지위와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살고, 조금 더 빠르게 배우려 하고,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는 사람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런 시장 안에서 내가 가진 사회적 지위는 사실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나를 억지로 기존의 틀 안에 밀어 넣는 것이 답일까. 오히려 그 기준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얼마를 번다”, “어디에 산다”, “무슨 직업이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선명하지 않지만, 어렴풋하게 고민의 방향은 보이는 것 같다.
물론 굳이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야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을 높이는 데 그것이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사회적 지위는 사랑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만남의 입장권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앞으로 사회적 지위의 기준이 어떻게 바뀔까 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어떤 일을 하느냐로 사회적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매우 짧은 기간이다. 미래의 사람들은 어쩌면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하던 지금의 방식을 꽤 디스토피아적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능의 가치가 점점 낮아지고, 직업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는 무엇이 새로운 사회적 지위가 될까. 여전히 돈일까. 소유일까. 영향력일까. 취향일까. 아니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능력일까.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을 만나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왔고, 연애를 하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그런데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면, 역설적으로 연애라는 경험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감정도, 스트레스도, 실망도, 오해도 겪어봐야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긴다. 내가 원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도, 결국 관계 안에서만 배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