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 무의식성 그리고 비합리성의 영역
지인분이 어떤 영상을 보고 해주신 이야기. 두서 없긴 한데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 노트.
AI가 결국 잘하는 건 “의식이 필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은 단순히 생각하는 능력이라기보다, 한 개인이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 욕망, 고통, 취향, 결핍 같은 것들에 의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내적 필연성에 가깝다.
반대로 AI가 잘하는 일은 어떤 정보나 사실에 기반해 판단을 내리는 일이다. 어느 정도 공식이 정해져 있거나, 평가 기준이 명확하거나, 최적화가 가능한 일. 즉 주어진 문제에 대해 가장 그럴듯하고 효율적인 답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개발, 리서치, 컨설팅,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의 많은 부분은 AI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물론 이 직업들이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사람을 설득하고, 책임을 지고, 가치 충돌을 다루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그 안에서도 지식과 정보를 이해하고, 그에 기반해 판단을 내리는 영역은 점점 AI가 인간보다 더 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창작이나 상담 같은 일은 인간이 더 잘할까?
창작은 흔히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창작의 기술적 과정만 놓고 보면, 결국 기존에 존재하던 어떤 것들을 분해하고 다시 조합하는 일에 가깝다. 완전히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조각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배열하는 것.
이 재조합이라는 행위 자체만 보면, 반드시 인간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AI는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훨씬 더 빠르게, 훨씬 더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결과물이 기존의 것과 다르게 보인다고 해서, 그 과정이 반드시 인간적인 의식의 산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같은 조각을 다른 방식으로 배치한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 창작의 핵심은 조합 그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왜 하필 그 조합에 집착하는가”이다. 왜 어떤 장면은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지, 왜 어떤 문장은 비효율적이어도 남겨두고 싶은지, 왜 어떤 이미지는 설명되지 않지만 계속 마음에 걸리는지. 이런 선택은 단순한 최적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취향, 결핍,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
상담도 비슷하다.
누군가를 상담할 때 그 누구도 완전히 객관적인 상담을 할 수 없다. 사람의 상담은 결국 각자의 의식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살아온 삶, 경험, 고통, 가치관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AI는 이런 의미의 의식이 없다.
AI는 자기 삶의 경험이나 상처에 기반해 상대를 판단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상담에서 필요한 정보, 상대방의 상태, 그 사람이 원하는 반응, 그리고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할 가능성이 높은 답을 조합해낸다.
예를 들어 AI로 모든 것이 구성된 내 방이 있다고 해보자.
내가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AI는 내 감정 상태를 파악하고, 내가 원하는 노래, 온도, 조명, 음식, 대화 방식을 바로 제안한다. 내가 외로운지, 지쳤는지, 흥분해 있는지, 위로가 필요한지 혹은 그냥 혼자 있고 싶은지를 감지하고 그에 맞는 반응을 한다.
이것은 의식의 영역이라기보다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고 정의한 결과물에 기반한 판단의 영역이다. 즉 “나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꼭 의식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충분한 데이터와 맥락이 있다면, AI는 인간보다 더 일관되고 정확하게 나를 예측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의식의 명확한 정의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의식이 필요한 일은 어떤 것일까?다르게 말하면, 인간이 AI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의식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 레벨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성” 또는 “비이성”이라고 정의해보면 어떨까.
사람들은 대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이 논리와 이유에 기반해 내려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결정이 각자가 가진 의식에 기반해 내려진다. 즉 나라는 사람이 내 의식을 통해 먼저 결정을 내리고, 이후에 그 결정에 대한 여러 논리적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영화를 보거나, 디저트를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거나, 잠을 자지 않으면서까지 일을 하거나 하는 행위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행위들에 대해 항상 어떤 이유를 붙인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영감을 얻기 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등등.
하지만 사실 그 밑에는 더 깊은 내적 이유가 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 설명하기 어렵지만 끌리는 감각. 어떤 결핍을 채우고 싶거나, 어떤 고통을 피하고 싶거나, 어떤 모습의 나를 증명하고 싶은 욕망. 이런 것들이 우리를 움직인다.
이런 행위들은 절대적으로 효율적이지 않다.
노동의 관점에서만 보면 인간은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생산성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이 시키는 많은 행위들은 그 관점에서 벗어나 있다. 비효율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때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그 지점이 인간에게 남는 영역일 수 있다.
AI는 효율적인 판단을 잘한다. 하지만 인간은 비효율적인 욕망을 가진다. AI는 최적의 답을 찾는다. 하지만 인간은 왜 그 답을 원해야 하는지, 혹은 왜 그 답을 거부하고 싶은지를 느낀다.
그럼 일이라는 관점에서 이 “의식”이 요구되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번째는 문제를 정의하는 일이다.
AI는 주어진 문제를 잘 풀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정말 풀 가치가 있는지,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지, 어떤 불편함을 그냥 넘기지 않고 붙잡을 것인지는 인간의 욕망과 감각에 가깝다.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누군가는 그중 하나를 자기 삶의 문제로 느낀다. 그 감각은 효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취향과 세계관을 만드는 일이다.
브랜드, 예술, 콘텐츠, 창업 아이디어는 단순히 좋은 답을 찾는 일이 아니다. “나는 왜 이것을 중요하다고 믿는가”에서 출발한다. 모두에게 최적화된 결과물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이 끝까지 밀고 가는 관점과 취향이 사람들을 움직일 때가 있다.
세 번째는 비효율을 감수하는 일이다.
오래 걸리고, 돈이 안 되고, 실패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해야겠다고 느끼는 일들이 있다. 예술, 창업, 연구, 운동, 사랑 같은 것들이 그렇다. 효율의 관점에서는 이상하지만, 인간은 그런 비효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증명하거나 확장한다.
네 번째는 타인의 비이성을 이해하는 일이다.
사람은 언제나 최적의 선택을 하지 않는다. 고객도, 팬도, 환자도, 시민도, 동료도 모두 비합리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인간의 일은 타인의 비합리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쪽에 가까워질 수 있다.
결국 AI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일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일이 아닐 수 있다.
판단은 점점 AI가 더 잘하게 된다. 정보를 찾고, 조합하고, 비교하고, 예측하고, 최적화하는 능력은 AI 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인간에게 남는 것은 비효율적 욕망을 갖는 일, 설명되지 않는 취향을 밀고 가는 일, 어떤 문제를 자기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일일 수 있다.
AI가 합리성의 끝으로 갈수록, 인간에게 남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기만의 비합리성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인간의 경쟁력은 더 합리적인 사람이 되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안의 비합리성을 극대화 시키는 능력일 수 있다.

